5살 때 이상 징후 발견.. 최초 진단까지 2년여 걸려 치료기관마다 진단 제각각.. 진학 후 증세 더 악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학습장애를 앓는 정민(16·가명)이는 지난 10여년 세월을 고통 속에 살아왔다. 5살 때 처음으로 이상징후가 발견됐지만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치료 시스템의 비효율성 탓에 조기치료 기회를 놓쳐 지금은 체념 단계까지 왔다.
정민이는 그간 소아정신과 5곳과 치료실·복지관 등 8곳을 전전했고, 학교도 3번이나 옮겼으나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세상을 향한 아이의 분노와 엄마 김혜선(가명)씨의 깊은 한숨뿐이다. 정민이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세계일보 취재팀은 정민이의 사례를 아동청소년 의료보건 선진국인 영국의 아동 치료 사례와 비교해보기로 했다. 어머니 김씨와의 5시간 인터뷰와 그동안의 병원 진료기록 조사 등을 통해 정민이의 지난 11년간의 치료 과정을 되짚어봤다.
◆혼란스러웠던 치료 과정=
1996년 5월의 어느 날. 김씨는 정민이가 다니던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눈을 맞추려 하지 않는데 자폐 같다”는 말을 들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를 부여안고 서울시내 유명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많지 않아 진료를 받으려면 평균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주변에서 추천해준 장애인복지관 2곳의 문을 두드렸다.
복지관에서는 정민이의 발달상태와 언어능력이 또래에 비해 뒤처지니 조기교육과 언어치료를 시키라고 했지만 정작 언어치료실에선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복지관의 진단을 믿을 수 없어 뒤늦게 C대학병원을 갔지만 의사는 “ADHD성향인 듯하나 정확한 건 검사를 받아봐야 안다”고 했다. 그러나 검사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김씨는 결국 집 근처 D소아정신과에서 심리검사를 받고 나서야 ADHD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이상징후를 발견한 지 2년여가 흐른 뒤였다.
초기 진단도 어려웠지만 치료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1년만 치료하면 완치될 것”이라는 의사 얘기에 희망을 갖고 초등학교 진학을 1년 미루면서 D병원에서 3년간 치료했지만 아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또래친구와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D병원은 사회성을 길러주는 그룹치료가 아닌 일대일치료만 고집했다. 결국 복합장애로 번져 틱증세까지 보였다.
김씨는 안 되겠다 싶어 그룹치료로 유명한 E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룹치료는 1년이 넘도록 자리가 나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이 잠시 다녔던 F병원에선 아이에게 우울증이 있다고 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찾아간 병원마다 같은 아이를 놓고 제각각 다른 진단을 내리자 김씨는 마냥 혼란스럽기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