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2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미국 수영 영웅 마이클 펠프스가 올림픽에서 딴 어마어마한 메달 숫자다. 올림픽 사상 최다 기록인 이 불멸의 족적 뒤엔 승리에 대한 극심한 압박감이 있었다. 2016년 은퇴 뒤 그는 우울증을 앓아 왔음을 고백했다. “우리는 언제나 완벽해야 했다. 더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많은 운동선수들이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다. 미국 대학 운동선수들의 경우 우울증 발병률이 21%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올림픽 출전 선수를 비롯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엘리트 선수들의 강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우울증은 은퇴 이후 더 심각해진다. “선수 시절에는 내일 더 잘 하겠다는 희망과 의지라도 있었지만 은퇴 후엔 그마저도 없다.”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박찬호의 토로다.
지금 운동선수들은 코로나19가 덮쳐 더욱 힘겨운 상황이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의 공포와 우울에 더해 목표 자체가 사라질 경우의 공허 혹은 불안감 또한 견뎌 내기 쉽지 않다. 4년간 피땀 흘린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처지가 단적인 예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일수록 심리적으로 더 취약하다. 해외 전지훈련에서 불면과 식욕 감퇴를 겪던 어떤 선수는 훈련장에 나가야 할 시간이면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에 너무 크게 들려 결국 일상생활과 운동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프랑스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단식 1회전을 가볍게 통과한 세계 랭킹 2위 오사카 나오미가 지난 1일 별안간 기권을 선언했다는 소식이다. 그는 대회 의무 사항인 공식 인터뷰가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우울증을 겪어 왔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것에 심리적 부담이 크다는 이유다. 우울증은 대인 관계 공포증, 사회적 활동에 대한 불안감 등 여러 요소를 지닌다. 오사카는 자신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기권이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다.
흔히 운동은 불안 증세를 덜어주는 훌륭한 도구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것이 되레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역설이다. 많은 선수들이 이를 숨긴 채 살아간다. 강한 겉모습과 이미지 때문에 정작 심리적 고충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선수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시선이 깊어질 필요가 있다. 눈앞의 성적 향상이 아니라 선수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의 길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