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도움으로 치료 받고 회복 중
지난 2월 동네 공부방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서울의 한 사회복지관을 찾아온 민희(12·여·가명)와 민수(9·가명) 남매는 한눈에도 정상이 아니었다. 민희는 상담받는 도중에도 계속 무언가 쫓기는 듯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민수도 제 또래에 비해 말이 너무 어눌했고 쉬운 글도 읽지 못했다. 가족과 학교의 무관심으로 오랫동안 방치됐던 게 분명해 보였다.
사회복지사의 상담결과 아이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어머니는 3년 전 이혼한 뒤 집을 떠났고, 도매상 유통일을 돕는 아버지는 아침 일찍 나가 자정 무렵에야 귀가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같이 살지만 폐지 수집을 하러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집을 비웠다. 가족 누구도 두 아이를 돌봐주지 못하는 처지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매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줄곧 둘이서만 지냈다. 동네 아이들이 학원에서 공부할 시간에 두 아이는 밤늦게까지 거리를 배회하다 잠에 들곤 했다.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였고, 성적도 엉망이 됐다.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되면서 밝은 성격이었던 민희는 어느새 매사에 의욕을 잃고 행동도 말도 점점 무기력하게 변해갔다. 동생도 어려서부터 혼자만 있어서인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두 아이 모두 잘 씻지 않아 몸에서 심한 냄새까지 났다. 가족들이 모르는 사이 아이들의 몸도 마음도 병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할머니가 아이들이 좀 이상하다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손을 쓰지 못했다. 할머니도 2년 전 암 수술을 해 건강이 좋지 않은 데다 생계를 위해 매일 저녁 일을 나가야 했기에 아이들을 병원이나 복지관에 데려갈 엄두를 못낸 것이다. 빚 갚느라 가족들 한 달 수입이 고작 40만_50만원에 불과하지만 현재 다섯 식구가 사는 작은 빌라를 소유하고 있어 기초생활수급 혜택도 받지 못하는 처지다.
학교에서도 두 아이는 천덕꾸러기였다. 민수의 1학년 담임선생님이 할머니에게 치료를 권한 것 외에 지금껏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관심이나 도움을 준 적은 없었다.
두 아이가 밤늦게까지 동네를 배회하며 이상한 행동과 말을 하고 다니는 것을 걱정한 동네 공부방 선생님이 복지관으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 상태였을 것이다.
복지사는 남매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복지관과 연계된 소아정신과에 정신건강 검진을 의뢰했다. 그 결과 민희는 소아우울증, 민수는 학습장애 진단을 받았다. ‘주변에서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같이 갔던 할머니는 무지와 가난을 탓하며 대성통곡했다. 다행히 남매는 복지관의 도움으로 미술 및 인지학습 치료 등을 받으며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팀장)·김동진·박은주·유덕영·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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