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가지 치료가 안되는 병(病有 六不治 )
-사기(史記)의 편작창공 열전(扁鵲倉公列傳)
* 치료가 안되는 이유는 여섯가지라고 말한다.
이는 반대로 생각한다면,
이러한 내용들을 충실히 행하면 못 고칠 병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대인들은 두개천골계(craniosacral system)를 알 수가 없었다.
마음(신, 神)에 관련된 것은 -1. 6.에 언급하며
몸(형, 形)에 관련한 것은 -2. 3. 4. 5 에서 말한다.
형신(形神)통일의 새로운 접근방법은
문제의 제기는 수전년 전부터 있어온 과거의 것이지만,
해결방법은 항상 그 시대의 의학지식 수준에 알맞은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 - 問題是 舊的 方法是 新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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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史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에 보면,
“편작 고병 유육 불치야(扁鵲 故病 有六 不治也),
취시 유육종 병인(就是有六種病人)
타 불급치시 나육종니(他 不給治是 哪六種呢)” 라 기록되어 있다.
<편작이 원래 치료하지 못하는 병이 여섯가지가 있었다.
여섯 종류의 환자는 편작도 고치지 못하였다.
그가 치료하지 못했다는 그 여섯 가지 종류란 무엇인가...?>
1. 驕恣 不論 於理 一不治也 (교자 부론 어리 일불치야)
교만하고 방자하여 자기 멋대로 사리(事理)를 살피고, 정확한 병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 치료가 안되는 이유이고.
2. 輕身 重財 二不治也 (경신 중재 이불치야)
몸을 가볍게 여기고, 오히려 몸보다는 재물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두 번째 치료가 안되는 이유이고.
3. 衣食 不能適 三不治也 (의식 불능적 삼불치야)
의식주를 분수에 맞게 하지 못하는 것이
세 번째 치료가 안되는 이유이고.
4. 陰陽 臟氣 不定 四不治也 (음양장기 부정 사불치야)
양(陽)과 음(陰)을 문란하게 하여 오장(五臟)의 기운을 안정치 못하게 하는 것이
네 번째 치료가 안되는 이유이고.
( * 음양(陰陽)-인체내에 있는 기와 혈을 의미한다.
5장(臟)의 기(氣)가 충족하면 신명(神明)이 뚜렸하게 나타난다.
만일 기혈의 운행이 무질서해지면 5 장의 신명도 착란을 일으키게 된다.
사람의 혼백(魂魄)이 교란되면 장기(藏氣) 역시 고정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
용의(庸醫)가 약을 잘못 사용하여 환자의 음양이 교란되고 장기(藏氣)가 문란해지면
편작을 찾아가도 치료 방법이 없다. )
5. 形羸 不能 服藥 五不治也 (형리 불능 복약 오불치야)
몸의 형체가 말라서(매우 허약) 약을 복용하지 못하는 것이
다섯 번째 치료가 안되는 이유이고.
6. 信巫 不信醫 六不治也 (신무 불신의 육불치야)
보이지 않는 미신을 굳게 믿고서, 오히려 의사를 믿지 못하는 것이
여섯 번째 치료가 안되는 이유라 하였다.
☞ 춘추시대(春秋時代 : BC 770 년 ? BC 403 년)의 양의(良醫)는 의완(醫緩)과 의화(醫和)가 있었고,
전국시대(戰國時代 : BC 403 년 ? BC 221 년)의 양의(良醫)는 편작(扁鵲)이었다.
그 당시 중국에 140여 개의 제후국(諸侯國)이 있었는데
산동성(山東省) 임치(臨淄)에 도읍(都邑)을 정했던 제(齊) 나라는 동방의 대국(大國)이었다.
다음은 편작(扁鵲)이 제 나라를 방문했을 때 발생한 고사의 일부분이다.
< 편작(扁鵲)이 제 나라의 도성 임치(臨淄)에 들어가니 제환공(齊桓公)이 편작을 접대하였다.
편작은 제환공의 얼굴을 대면한 후,
’폐하! 소인이 폐하의 얼굴을 관찰해 본 바에 의하면 폐하는 현재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다행한 것은 질병이 오직 피부에 머물러 있습니다.
만일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병은 더 깊숙하게 들어갑니다.’ 고 아뢰었다.
제환후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나의 신체는 매우 건강하다. 그리고 아무런 질병도 없다.' 고 말했다.
편작이 떠난 후에 제환후는 좌우 막료들에게 '행의(行醫)들은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들이군!
병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병이 있다고 말하고, 의사를 불러 치료하게 하여
이익을 도모하고, 남의 공적을 가로챔으로써 즐거움을 누리는 자들 아닌가?' 라고 말했다.">
”편작 재제국적 도성(扁鵲 在齊國的 都城), 수도 제환후 적접대(受 到 齊桓候 的接待),
타 견도료 환후지후 취설(他見到了 桓候之後 就說) : ”군후(君侯)! 거아적 관찰(據我的 觀察),
이적 신체 불태호(爾的身體不太好), 행이 저병 목전 환시 기부지질(幸而這病目前還是肌膚之疾),
여과 막시 불리(如果 漠視 不理), 시회 가심적(是會加深的).”
단 환후 요요두(但 桓候 搖搖頭), 설 자기신체 흔건강(說自己身體 佷健康),
근본 몰유 십마병(根本沒有什마?病). 편작 주료이후(扁鵲 走了以後),
환후 대좌우 막료 설(桓候 對左右 幕僚 說) :
”행의적인(行醫的人), 상 유자사 자리적(常有自私自利的),
희환파 몰유병적인 설성유병(喜歡 把沒有病的人 說 成有病),
여과 청 타문래의(如果 請他們來醫), 나마(那?), 타문기 가도리(他們 旣可圖利),
우가요공(又可邀功), 개부시상료 당마(豈不是上了當마?)?”
이 고사(故事)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환공은 의심이 많았으며, 편작을 부도덕한 의사로 취급하였다.
자신의 짧은 의학 지식과 느낌으로 행의(의사=의생)를 판단하려 하였고,
의사(行醫)의 용모와 언행, 태도가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치료법이 돈을 벌려고 하는 의사로 의심하여, 믿지 못하여 편작의 치료를 거부하였다.
...... 결국 제환공은 병으로 죽고 만다......
기원전 642년 10월 7일 제환공이 죽었는데,
그는 수조 · 역아 · 개방 3인당에 의해 격리된 상태로,
썩어서 냄새가 진동하고 벌레가 들끓었으며
죽은 후 67일 동안 장례도 치르지 못한 상태였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