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건강을 위한 ‘심리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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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바이러스에 대한 마지막 생물학적 방어선이다. 그런데 마음이 지치면 생물학적 방어선마저 방어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심리 방역이 중요하다.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라 질문하면 ‘가슴이요’란 답이 대부분이다.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는 이별 노래의 가사처럼 마음이 아프면 심장이 시리다. 그렇지만 사실 마음은 뇌 안에 있다. 뇌가 컴퓨터의 하드웨어라면 마음은 소프트웨어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이별을 하면 뇌가 아파야 할 텐데 왜 가슴이 시릴까. 마음과 몸이 뇌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연구하는 마음-몸의학(mind-body medicine)이란 분야도 있다. 그렇다면 마음과 몸 중 어디가 더 중요할까. 육체보다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몸이 아프면 우울이 찾아온다. 반대로 마음이 지치면 몸도 아파온다. 즉, 마음과 몸의 관리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마음, 뇌, 그리고 몸은 패키지 상품처럼 함께 관리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러스 공포로 마음마저 움츠러들다 보니 바이러스 감염 같은 전염병 예방 관리에 사용하는 방역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적용해 심리 방역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아마도 감기에 걸렸는데 기분이 더 좋아진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마음과 몸이 분리됐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몸이 아프면 어느 정도의 우울은 다 찾아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한다. 반대로 몸이 건강했는데 심리적 스트레스가 많은 어느 날 불쑥 감기가 찾아오는 경험도 우리는 하게 된다. 마음이 지쳤는데 마음이 뇌를 통해 면역 기능 등을 약화시켜 바이러스 침범을 잘 막지 못한 것이다. 바이러스 공포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측면에서도 심리 방역이 중요하지만, 실제로 지친 마음을 재충전해 주어야 우리 몸의 면역 군대도 잘 싸울 수 있다.
요즘 어르신들은 암보다 치매가 더 두렵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흔히 이야기하는 ‘나이 들면 다 똑같이 늙는 거야’는 사실이 아니다. 가족력이 있어도 관리를 잘해 오히려 뇌 건강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건강을 믿고 소홀히 했다가 노화가 빠르게 진행된 경우도 있다. 그럼, 뇌 건강을 위한 비법은 무엇일까.
인지비축분(認知備蓄分: cognitive reserve)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인지비축분이 클수록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인지비축분은 인생을 사는 동안 얼마나 3가지 요소를 꾸준히 즐겼는지를 평가해 합산한 값인데, 첫째 요소는 책도 꾸준히 읽고 편지도 쓰고 하는 등의 인지 활동, 둘째는 여행도 가고 친구들과 맛집에 가서 수다도 떨고 봉사 활동을 하는 등 사회적 활동, 그리고 마지막 요소는 꾸준히 따뜻한 소통을 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얼마나 있느냐 하는 사회적 관계의 정도다. 권위 있는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 보고에 따르면 인지비축분의 값이 큰 사람들에게서 치매 발병이 적었다. 더 나아가 사후 뇌(腦) 부검에서 알츠하이머병이나 뇌경색에 준하는 뇌병변이 존재한 경우도 인지비축분이 큰 사람은 생전 치매 발병이 적었다. 뇌라는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인지 기능은 유지됐다는 이야기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도 마음을 열어야
치매 예방에 있어서도 마음을 잘 관리해 주는 활동이 바이러스에 대한 심리 방역만큼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다. 놀라운 것은 뇌 자체는 심한 노화나 질병이 찾아왔는데도 즐겁게 뇌를 써 주고. 사람들과 기분 좋은 만남도 하고. 봉사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가 있었던 사람은 뇌가 망가져도 기능은 정상을 유지했다는 이야기다. 학자 입장에서 보면 어려운 연구를 한 것이다. 이 연구 결과 내용 자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이다. 상식 안에 치매 예방, 심리 방역의 지혜가 담겨 있는 셈이다.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노력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됐다. 중요하다. 밀집된 공간에 모여 있으면 집단 감염의 위험에 노출된다. 그런데 심리 방역 측면에서 보면 사회적 거리 두기는 마음의 방어력을 약화시키고 인지비축분도 떨어트리게 된다. 그래서 물리적 거리 두기는 하더라고 마음까지 다 닫을 필요는 없다. 더 열어 주어야 한다. 화상 통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소통 기술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만나지 못하고 있는 부모, 친척,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취하면 면역력도 올라가고 길게 보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자연과의 만남도 항스트레스 효과가 크다. 여유로울 때 한적한 시간, 장소를 택해 혼자 조용히 봄 산책을 즐기는 것 또한 내 마음을 통해 뇌와 몸을 건강하게 해 준다.
인지비축분은 어찌 보면 현재인 바로 오늘을 얼마나 즐기며 살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척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음이 불안해 미래에 가 있는데 독서를 하고 여행을 간들 제대로 즐길 수 없다. 불안은 도망칠수록 더 세게 나에게 다가오는 경향이 있다. 불안을 피하지 말고 직시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기관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평생 단 한 번인 오늘이 헛되이 지나가지 않도록 내 마음이 좋아하는 일 한 가지는 간단한 것이라도 오늘 즐기는 여유를 권하고 싶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9호(2020년 0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