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쇠는 뇌졸중 등 다른 질병으로 인해 시작될 수 있고, 다른 질병 없이도 시작될 수 있다(1차성 노쇠). 1차성 노쇠는 신체 활동 부족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노인이 신체 활동을 줄이는 요인은 다양하다.
◇신체 활동 저하… 몸 전체에 나쁜 영향
걷거나 물건을 옮기는 등 일상적인 신체 활동이 줄어들면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 저하되고, 심하면 노쇠가 진행된다. 신체 활동 감소는 가장 먼저 근육에 타격을 입힌다. 근육 조직은 새로 생겨나고(생성) 사라지기(분해)를 반복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데, 활동이 줄어들면 분해는 지속되지만 생성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동아대 건강관리학과 박현태 교수는 "노인 28~34%가 레저형 신체 활동을 하지만 연령이 증가할수록 감소하며,활동 강도도 낮아져 노쇠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사진=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그래픽=양진경
신체 활동 저하는 근육뿐 아니라 뼈, 혈관 등 몸 전체에 나쁜 영향을 준다. 골다공증을 증가시키고, 심장과 폐·혈관의 기능을 떨어뜨려 원활한 대사를 방해하고, 만성질환을 일으킨다. 멜라토닌 호르몬 생성을 방해해 수면의 질을 나쁘게 하고 비타민D 흡수를 줄여 뼈를 약하게 한다. 인지와 정서 기능도 떨어뜨린다.
해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절한 신체 활동을 하거나 체력이 높은 남성은 그렇지 않는 남성보다 사망률이 50% 정도 낮다. 심지어 음주 등 잘못된 생활습관보다 체력이 낮은 사람의 사망률이 더 높다는 연구도 있다.
노인이 신체 활동을 적게 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질병이나 신체적인 문제로활동이 줄어드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사회적, 정신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사회적 요인에 의한 신체 활동 감소는 특히 남성 노인에게 많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김기웅 교수는 "남성 노인은 가족을 위해 일을 하면서 신체 활동을 유지하지만, 은퇴 후에 역할이 없어지면서 신체 활동을 할 기회가 함께 줄어들기 쉽다"고 말했다. 또 손자를 돌보던 노인은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에 다시 한 번 역할 상실을 맛본다. 더 이상 손자를 품 안에 둘 수 없고, 학교 교과 과정에 맞춰 손자를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다.
◇노인 우울증은 의욕 저하가 특징
정신적 요인으로는 우울증이 대표적이다. 김기웅 교수는 "노인 우울증은 다른 계층과 달리,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반드시 동반하지 않으며, 매사에 흥미와 의욕이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며 "의욕 저하로 인해 기본적인 활동조차 소홀히 하면 노쇠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또, 노인 우울증은 노쇠를 유발하기 쉬운 질병인 심혈관질환, 뇌혈관질환, 당뇨병, 암, 치매의 발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 우울증은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43~63% 증가시키고 뇌졸중과 당뇨병 위험을 1.5배, 관상동맥질환 위험을 2.6배 증가시킨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과다 분비를 촉진함으로써 혈당을 높이고 염증을 일으켜 혈관을 손상한다. 그 밖에 인지기능 장애, 치매, 정신적 충격, 집단 따돌림, 친구와의 사소한 말다툼 등도 신체 활동 저하의 정신적 원인이 된다.
정신적 갈등은 노인들의 모임에서 빈번히 발생한다. 김모(68)씨는 은퇴 후 노인회관에 나갔지만 "70·80대 노인들이 '아이' 취급하듯 청소시키고 밥상 차리라고 해서" 발길을 끊었다. 박모(70·여)씨는 새로 이사온 아파트 내 복지회관에 나갔는데 "할아버지들의 관심을 많이 받자 할머니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서" 우울증까지 걸렸다. 이밖에 "다른 노인들의 행동이 격에 맞지 않아서" "종교 단체에서의 갈등 때문에" 등 노인은 모임에서 다양한 갈등을 겪는다.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손상준 교수는 "노인들의 어울림 속에는 텃세 등 장벽이 알게 모르게 존재한다"며 "이것이 적절히 해소되지 못하면 원할한 사회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습관과 성격으로 인한 활동 저하도 있다. 손상준 교수는 "노인은 평생 동안 지켜온 자기 관습이 있기 때문에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며 "이 경우 타인과의 갈등을 초래해 사회 활동이 저하되게 된다"고 말했다. 성격도 영향을 준다. 새로운 것을 즐겨 찾거나 도전적인 성향이라면 노년에도 신체 활동을 활발히 한다. 그러나 안전을 추구하고 위험을 피하려는 성격이면 변화된 상황을 두려워해 사교 활동이나 신체 활동에도 소극적이 된다.
◇'밝은 장소로 옮겨 앉기' 등 작은 활동부터 시작
노인이 신체 활동을 늘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사람을 존재 자체가 아닌 도구로 보고 "쓰임새가 끝났으니 굳이 돈까지 들여서 운동하는 것이 남사스럽다"는 식의 부정적인 사고를 바꾸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미 고정된 사고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김기웅 교수는 "노인은 자신이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자신보다 '자식에게 폐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고는 강력한 동기를 유발하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적극적인 신체 활동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체 활동은 '일주일에 근력운동 몇 회'처럼 기계적으로 시작하면 실패한다. 당사자의 신체 상태로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밝은 장소로 옮겨 앉기' '몇 걸음 걸어보기' 등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체 활동이 감소한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장일영 교수는 "신체 활동 감소를 인지하려면 '작년 이맘 때에 비해 이웃 만난 횟수가 몇 회 줄었다'는 등 구체적인 일을 비교하면 쉽다"며 "작은 활동부터 시작해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활동 습관을 만든 후에 균형운동, 근력운동 등으로 넓혀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78~83세 노인 30명 비교해 보니
한편, 경희대 융합의학과 김미지 교수에게 의뢰해, 78~83세 정상·전노쇠·노쇠인 각 10명, 총 30명을 대상으로 신체 활동과 주요 노쇠 지표를 비교한 결과 세 그룹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하루 평균 보행 시간은 정상인이 90분, 전노쇠인이 69분인 반면, 노쇠인은 27분에 불과했다. 청소 등 중강도 신체 활동 시간의 경우 정상인과 전노쇠인은 1일 평균 40분이었으나 노쇠인은 13분에 불과했다. 우울증 점수(15점 만점, 점수가 높을수록 상태 심함) 또한 정상인 1.2점, 전노쇠인 5.8점인 반면, 노쇠인은 9.2점으로 높게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