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불명 `폐동맥 고혈압` 40대 여성층서 빈번하게 발생 자가면역 질환자 더 조심해야
현기증 등 초기증상 가볍지만 확진후 생존율 낮아 치명적
임태균 기자
질환 이름이 고혈압이지만, 일반적인 고혈압과 전혀 다른 질환이 있다.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들에 이상이 생겨 폐동맥의 혈압이 상승하는 '폐동맥고혈압(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PAH)'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고혈압은 발병 원인이 고령화와 함께 비만, 운동 부족, 흡연, 과음, 염분 섭취, 스트레스 등 다양하다. 이 때문에 고혈압은 평소 생활습관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폐동맥고혈압은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의 혈압이 상승하는 치명적인 희귀 질환이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확진 후 평균 생존 기간이 2~3년으로 매우 짧다. 폐동맥고혈압의 특징을 알고, 인식 제고가 필요한 이유다.
폐동맥고혈압은 사소한 증상들로 시작된다. 초기 증상은 피로, 약간의 현기증, 기침, 부기 등 일반적으로 쉽게 겪는 것들이다. 또 비교적 젊은 40대 여성에게서 빈발하는 것 역시 일반 고혈압과 차이를 보인다.
희귀 질환으로 여겨지지만, 국내 환자 증가세는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는 2010년 1677명에서 2019년 기준 약 3003명으로 9년 동안 약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폐동맥고혈압은 인지도가 낮고 운동 후 호흡 곤란이나 가벼운 흉통, 피로감, 부기 등 폐동맥고혈압으로 인지할 특이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진단율이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로, 진단도 받지 못하고 숨겨진 폐동맥고혈압 환자가 4500~6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폐동맥고혈압은 원인이 불분명한 특발성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루푸스, 전신경화증, 류머티즘 관절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 환자에게서 합병증으로 폐동맥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자가면역질환은 몸속 어디에나 염증이 생길 수 있는데, 염증이 폐동맥에도 발생해 쌓이고, 혈관이 좁아져서 폐동맥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전신경화증에서 높은 확률로 폐동맥고혈압이 나타날 수 있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전신홍반성루푸스가 더 흔한 원인이다.
따라서 루푸스 환자가 호흡곤란 등의 증상과 동시에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손발 끝이 하얗게 변하는 '레이노 현상'이 함께 나타난다면 높은 확률로 폐동맥고혈압을 의심해볼 수 있다.
최진정 분당차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폐동맥고혈압은 인지도가 낮은 데다 비특이적이고 희귀한 질환인 만큼 초기에 의심하고 진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가족력이 있거나 자가면역질환자가 특별한 이유 없이 숨 가쁨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폐동맥고혈압을 의심하고 오른쪽 심장을 확인할 수 있는 심장초음파검사를 실시해 빠른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기 진단을 받고 효과적인 치료를 시작할 경우 생존율은 매우 높다. 대한폐고혈압연구회에 따르면 폐동맥고혈압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경우 생존율이 약 3배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적극 치료하면 진단 후 10년 이상 생존도 가능하며 기대생존율도 7.6년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폐동맥고혈압의 진단은 심장초음파검사를 통해 폐동맥 혈류 속도와 심장 크기 등을 보고 폐동맥고혈압의 소견이 확인되면 심전도, 폐기능 검사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폐동맥고혈압으로 확진한다. 이후 환자 상태에 따라 경구용 약제 또는 주사제 치료를 시행한다.
나진오 고려대 구로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희귀난치질환으로 여겨지던 폐동맥고혈압은 최근에는 치료제 발전으로 최대한 진행을 늦추며 관리할 수 있는 병으로 인식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