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여성은 남성보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훨씬 높아 주의해야 한다/사진=다사랑중앙병원 제공
지난달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던 40대 남녀가 술을 마시다 여성 A씨(44세)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람은 전북 김제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다 만나 친분을 쌓은 사이다. “죽을 때까지 마셔보자”는 남성 B씨(41세)의 제안에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선에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여관방에 들어가 11일 동안 술을 마셨다. B씨의 어머니는 “함께 술을 마시던 A씨가 죽은 것 같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한 당시 발견한 술병은 360㎖ 소주 32병과 1.8ℓ짜리 소주 6병에 달했다. 360㎖ 소주병으로 치면 62병을 마신 셈이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타살혐의점은 없고 술 때문에 장기가 심하게 손상됐다는 1차 소견을 밝혔다.
이 사건은 한동안 온라인 실시간 인기 검색어까지 오르며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이에 사망한 A씨의 딸은 인터넷을 통해 “부검 결과는 한 달 정도 걸리며 아직 사망 원인은 미상”이라며 “기사의 내용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아주길 바란다”는 글을 게시해 사건이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A씨의 딸은 “엄마가 알코올중독자는 맞으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이혼 후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술에 의존하다가 중독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또한 “술을 마시다 돌아가신 건 맞아도 사인이 100% 술 때문은 아니다”라며 “원래 혈압, 위궤양 등 약을 드셨고, 강원도로 떠나던 당시에는 약을 하나도 챙겨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해,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성태 원장은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죽음까지 이르게 만드는 알코올중독의 폐해와 치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편적 사례”라고 말했다.
알코올중독은 음주에 대한 조절능력을 상실한 뇌 질환이다. 중독 상태에 이르면 술로 인해 몸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뇌 구조도 변화한다. 그래서 치료 시기가 늦어질수록 회복이 어렵고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술을 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허 원장은 “이미 알코올에 중독된 뇌는 끊임없이 술에 대한 갈망을 부추기고 술을 마실 구실과 핑계를 만들어 낸다”며 “단순히 술과 격리시킨다면 퇴원 후 재음주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평생 술을 마시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전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알코올중독의 특성상 자신의 음주 문제를 자각하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데 있다. 허성태 원장은 “환자 대부분이 술을 마시는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나는 문제없다’며 부정하고 합리화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알코올에 더 취약한 반면 사회적 편견과 냉대로 자신의 음주 문제를 숨기는 경향이 있어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위점막 알코올 분해효소(ADH)가 남성보다 적어 알코올의 흡수 비율이 높다. 또한 체지방 비율은 높은 반면 수분 비율이 낮아서 혈중 알코올의 농도가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 허 원장은 “여성은 선천적인 차이로 남성에 비해 알코올 의존이 빠르게 진행되고 신체적 질환도 훨씬 빨리 악화된다”며 “이번 사건처럼 같은 양의 술을 마셨더라도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허 원장은 이어 “알코올중독은 술을 즐겨 마시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회복도 가능하다”며 “특히 여성의 경우 정서적인 문제를 술로 해결하는 경향이 높으므로 여성의 심리를 고려한 전문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